SKC(011790) 16.1Q 실적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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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대의 기록에 의해 붓다도.
러·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를 제공했다.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
미국·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파시즘과 군국주의하에서 이루어졌던 방식이다.
정상적 근대화의 길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그 결과로서 맺어진 조약의 1조는 강화도 조약 1조와 함께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군대를 해산할 수는 없다.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19세기 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다.